수면양말
올해 1월달 날씨가 유난스럽게 많이 추웠지요.
분당에서 서울로 통학하는 저는 자주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데요,
학교를 오가다가 생긴 일입니다.
저는 노숙자분들을 두려워하기도하고
좋지못한 얘기도 종종 들어 그닥 좋지않은 느낌을 받는데요
그 주 쯤에는 제일 추웠던 날씨들이 연달아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버스로 갈아타기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던 중이였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계단 한가운데에서
어느 한분이 완전히 쪼그린 상태에서 엎드려 두손을 내밀고 앞에는 작은 박스가 있는거예요
뻥뻥 뚫린 곳이라 바람도 많이 들어오던 곳이였죠.
그래도 저는 그냥 그러려니하고 지나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냥 지나치려고 했던 순간, 제 눈길이 멈춘곳이 있었습니다.
그 분 발이였어요
그 추운 날씨에 맨발에 삼선 슬리퍼만 신고 계신 거예요
그냥 멀쩡한 발이라면 그렇게 계셔도 지나쳤을 텐데
발꿈치가 하얗게 트고 갈라지고 퍼런부분도 있고....
일단 지나치긴 했는데
그걸 본 뒤로부터는 도저히 그 잔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돈은 드리기 싫었습니다
그 돈이 정말 그 분께 도움이 되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거든요
(사기꾼일수도 있잖아요.... 불쌍한 척하는 분들처럼.)
양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따뜻한 수면양말.
물론 겨우 양말 한짝이지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드릴까 말까.
진짜 불쌍해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일 수도 있고
양말을 드리더라도 그 배후에 있는 무엇인가에 의해 뺏기진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도 설마 양말을 뺏어가진 않겠죠ㅎㅎ)
그 분이 사기꾼이라면 저는 나름 진심으로 드리는 것인데 그 진심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까봐 두렵기도했습니다.
그래도 그 분이 어떻든지간에 그 분 발만큼은 따뜻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 분이 언제언제 나오는 지 확인하고
앞 상점에서 파는 수면양말을 사서 후다닥 박스에 넣고 나왔습니다.
떨리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돈 넣는 곳에 검은 뭉텅이를 넣는다는 게 긴장되기도하고;;;
그 뒤 이주일정도 그 분이 나오질 않으셨습니다.
나오시면 발부터 확인하려고 했는데.
뭔가 아쉽더라구요
며칠 뒤 어느 분이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옷차림도 다르고 몸집도 조금 다른 것같더라구요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등산화 신고 계시더라구요ㅎㅎ
그 뒤 다른 분과 교체하며 다른 분들인 듯 보이시는 분들이 신발만큼은 단단하게 신고 나오시더라구요
내심 제가 드린 양말을 신고 계신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너무 욕심부린걸까요?)
무튼 그 분들께 제 진심이 전해졌든 아니든지간에
그 사건 이후로 발을 따뜻하게 하신 상태에서 옆드려 계신 그 분들을 보면
잘했단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