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1. 새로운 창조의 과정, 통섭
요즘 국내외적으로 통섭이 화두다. 통섭統攝은 '크게 줄기를 잡아 모든 것을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과학이나 인문학, 더 나아가 예술마저도 그 기저가 하나의 이치와 원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학제 간의 차이를 넘어 통합된 관점에서 공통의 법칙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통섭은 다소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경계가 분명한 분야들 간에 통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로 간의 연계 지점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통섭을 시도하게 되면 자칫 각 학문 분야의 순수한 독자성이 훼손되는 폐해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식을 역으로 적용해 보면, 통섭을 통해 학문의 제 분야들이 본래의 순수성을 보다 명료히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타 영역과의 비교와 연관관계를 통해 고유 영역의 독자성을 확인받고 기능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IT가 다른 제 분야와의 결합을 통해 일으킨 결과와 유사하다. 부가가치가 낮았던 전통 산업이 IT와의 결합을 통해 첨단 분야로 거듭나 자신의 본래 가치를 이어 가는 것과 같다. 결국 통섭은 고유의 영역을 더욱 명료히 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낳는 창조적 발전의 기반이 된다.
후천에 이르러 통섭의 개념이 나타난 것은 인류가 직면해 있는 문제가 더 이상 전문화, 세분화된 지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총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는 산업화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 증가뿐 아니라 브라질의 근대화를 위한 아마존 삼림개발, 13억 중국인들의 식생활 변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인들이 뒤섞여 있다. 또한 정보화시대의 생활필수품이 된 스마트 폰 등 IT기기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은 단지 IT기술뿐만이 아니다. 소재와 디자인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담아내고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해야 할 뿐 아니라, 조직 생활에서의 필요와 각종 소통 욕구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렇듯 후천시대의 흐름이 폭넓은 융합과 통합을 지향하기 때문에 인재들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통섭가형 인재가 선호된다. 즉 선천시대의 인재가 '전문가'였다면, 후천시대의 인재는 각각의 전문 분야를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통섭가'라 할 수 있다. 통섭가는 여러 가지를 많이 아는 사람만을 일컫는 말은 아니다. 시야와 안목을 한 차원 넓혀 진정으로 인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선천시대는 그 특성상 폭넓게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것보다 자신의 분야를 깊게 연구하여 전문성을 갖는 방식으로 발달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같이 나누고 공유하기보다 전문 집단에 속하는 소수가 독점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결합하지 않으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선천의 전문가에서 벗어나 후천의 통섭가로 거듭나야 하는 것은 시대 흐름이다. 이러한 통섭가형 인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체득을 통해 길러진다. 이제 통섭이 교육 분야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준비를 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무엇이든지 서로 통通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통함의 마지막 종착역은 자기 자신이지만,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배려할 수 있는 열린 정신이다. 나아가 다름이 창조의 핵심 요소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 필요하다.
2. 미래 교육의 핵심 코드, 체득
미래에는 관념의 시대에서 '체득體得'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체득이란 지식이나 관념 위주의 학습을 넘어 온 몸과 마음, 정신으로 경험하며 터득하는 통합적 학습방식을 말한다. 자신의 정기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다시 조합하여 새롭게 재창출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교육방식이다. 기존의 교육방식과 비교하면, 체득은 단순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 그 지식을 활용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지혜를 키운다. 나아가 대상을 가시적 관점에서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이면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통합적 의식을 가지게 한다.
몸이 뇌라는 말이 있다. 유아기에 스킨십이 많아야 뇌가 잘 발달된다고 한다. 듣고, 보고, 맡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감각이 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적 자극 하나에 의존하여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온몸을 이용하는 체득의 방식을 사용하면, 뇌를 더 크게 쓰는 효과가 얻어진다. 뇌과학자이자 신경외과 의사인 펜필드Penfield 박사에 따르면 신체의 각 부위를 지배하는 뇌신경 세포의 양에 비례하여 우리 몸을 다시 그렸을 때, 손과 얼굴이 차지하는 부분이 훨씬 커진다고 한다. 뇌기능과 관련해 그만큼 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즉 손은 인간으로 하여금 경험과 체득을 통해 스스로의 의식을 진화시켜 나갈 수 있게끔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손은 창조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 정신을 입체적으로 쓰며 통합해 내는 체득 위주의 교육은 인간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킨다. 시대는 저문다. 사소한 것이라도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교류함으로써 통섭과 통합을 통해 각각의 창조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학습 방법이 선호된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이분법적 관점이 주도하는 시대가 아닌 다름을 새로운 창조의 매개로 삼아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 어울려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체득을 거칠 때만 가능하다. 체득한 것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자체가 불필요해지며, 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생산적 정보교환에 집중하게 된다. 다르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경험을 듣는 것이 자신의 발전을 위한 교류의 장이 되고, 이를 통해 보다 창조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3. 창의력을 이끄는 무형의 핵심 기제, 호흡
교육에서 체득이 중요한 이유는 창의력 때문이다. 머리만을 사용하여 학습하면 분석 능력은 향상되지만 창의력은 감퇴된다. 창의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 정신의 정보를 통합시켜 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한데 그것이 '호흡'이다. 호흡은 인간의 몸과 마음, 정신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균형을 잡아 준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능을 크게 활성화시키고 융합과 통합적용을 일으켜 새로운 창조작용을 이루게끔 돕는다. 즉 호흡은 창조와 통합의 힘을 제공한다. 그래서 호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식 창조의 수준이 달라진다.
과학적으로 볼 때,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일은 후뇌가 담당한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고, 생각하고, 조절하고, 계획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앞쪽 뇌에서 담당한다. 그래서 요즘 앞쪽형 인간을 많이 이야기 한다. 앞쪽형 인간을 강조한다고 하여 앞쪽 뇌만 중요하고 뒤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중요하므로 그 기능의 차이를 알고 이 둘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정보를 받아들여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조절 위기를 겪어 보아야 조절하는 훈련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조절력도 키울 수 있다.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전두엽이 손상된 치매환자는 눈앞의 충동에 매달리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고집이 세고, 화를 잘 내며,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전두엽이 발달한 사람은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데 강하며, 화술이 뛰어나고, 유머감각도 남다를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생각까지고 잘 읽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쪽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명상을 하며, 사색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법들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호흡이다.
호흡은 종교와 수행에서도 기본 바탕이 되어 왔다.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자기계발의 요소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호흡은 정신과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인간은 호흡을 통해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내면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통합의 본성을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식이 진화하고 상승한다. 물론 인간의식이 진화하는 데에는 내면의 작용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많은 정보가 유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외부환경의 정보들 중 상위(빛)차원의 정보를 유입시키는 매개체가 호흡이다. 지구 공간에는 수많은 진화의 요소들이 각각의 정보로 내재해 있는데, 호흡을 통해 그러한 다양한 영역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자체 내의 유전정보DNA에 저장된 본능 때문이지만, 길을 이끄는 정보가 자연 공간과 물에 기록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물'이 연어를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연어는 본능에서 일어나는 의지로 길을 찾고, 물길은 연어에게 목적지에 이르는 정보를 제공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자신의 유전정보뿐 아니라 자연만물과 시공에 정보로 담겨있다. 인류는 자신들의 힘과 의지로 진화하며 상승해 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가능하게끔 자연만물과 지구가 중요한 환경적 역할을 하였고, 시공간에 담긴 무형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호흡이 핵심 작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쪽형 인간이 되라"는 말은 수도자의 관점에서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 뇌의 앞쪽에는 인간의 모든 정신과 직관, 영적 능력을 주관하고 나아가 창조적 기능까지도 담당하는 상주(上珠/상단전)가 있기 때문이다. 호흡을 통해 창의력이 일깨워지고 새로운 지혜가 생겨나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된 창조적 힘이 의식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즉 의식의 영역이 무의식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의미로서의 편입을 말하며, 이러한 의식의 근본적인 조화와 통합을 이루어 내는 역할을 호흡이 담당한다.
엄밀한 관점에서 보면 무의식이란 없다. 일반 의식으로 잘 닿을 수 없는 영역이므로 상대적 관점에서 무의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영어로 '컨셔스니스consciuness'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공통적인 인지'를 의미한다. 즉 모든 사람들의 공통으로 사용하는 의식의 영역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식의 영역은 물질적 기반의 정보를ㄹ 토대로 한다. 그런데 무의식의 영역은 주고 기와 빛의 차원에서 영향을 받게 되므로 사람들이 그 영역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호흡을 통해 인간의 인식 능력이 물질적 기반에서 기적氣的인 부분 나아가 빛적인 부분까지 점차 확대되면,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 영역의 정보가 일깨워져 의식의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상의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키는 진화의 동인으로 작용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인간의 존재적 빛을 상승시키는 작용이다. 이는 인간이 지닌 무의식의 영역을 원래 목적에 맞게끔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 영역은 호흡이 아니면 일깨워 낼 수 없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무의식의 사용은 근원적 의미에서의 무의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의식의 영역에 있되 평소에 닫혀 있던 영역(잠재의식)을 조금 더 일깨워 사용하는 것뿐이다.
원래 무의식의 영역은 인간이 빛의 상승을 이룰 때 사용하기 위해 준비된 영역이다. 흔히 말하는 인간의식이 진화한다. 그렇게 되면 물질 차원에서 사용하는 의식, 빛과 물질을 가교하는 진기 차원에서의 무의식, 그리고 빛의 차원에서의 근원적 의식을 '한桓의식'으로 통합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한 통합의 역할을 담당하는 요소가 호흡이다.